鐵甕城
관객모독 본문
*제목과 일부 내용의 모티프: 희곡 <관객모독> (한스 페터케 원작, 1966 오스트리아 초연)
제 1막
막이 열리고 웅장한 오케스트라 합주가 들려온다. 무대의 곳곳에는 금빛과 푸른빛 천이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고, 크레파스를 이용해 마구잡이로 칠한 듯한 별과 달의 종이 그림 장식이 천장에 매달려 있다. 무대 배경에는 나무와 풀, 그리고 중세 시대의 성이 삐뚤빼뚤한 선으로 조악하게 그려져 있다. 오케스트라 합주가 끝나자 무대 배경에 그려진 성의 문이 불길한 소리를 내며 열린다. 광대 복장의 호리호리한 남자가 그 안에서 나온다. 광대는 뒷짐을 진 채 느릿한 걸음으로 무대를 한 바퀴 돌아보며 관객 한 명 한 명과 진지하게 눈을 맞추고는 무대 가운데에 선다.
광대: (과장된 포즈로 고개를 숙이며 광대 모자를 벗고, 모자를 든 손을 가슴 앞에 갖다대며 관객을 향해 예의바르게 인사한다.) 친애하는 관객 여러분께 이르노니, 오늘 이 미천한 광대가 입 밖으로 내는 것은 오로지 거짓 뿐이외다.
광대가 다시 뒤로 돌아 처음 들어왔던 문밖으로 걸어 나간다. 문이 닫히고 잠시 후에 무대 오른쪽에서 수염이 바닥에 끌리도록 긴 나이 지긋한 노인이 옆구리에 커다란 책을 낀 채 무대 한가운데로 걸어온다. 노인은 품 안에서 동그란 안경을 꺼내 쓰고 책을 펼쳐 읽는다.
노인: (엄숙한 목소리로) 부족한 것 없이 풍족한 집에서 태어났으며, 그가 태어난 날 대를 이을 아들을 애타게 기다리던 노부부는 기쁨에 겨워 눈물을 흘렸노라. 아름다운 찬송가와 축복을 염원하는 기도 소리를 들으며 세례를 받은 아이는 어렸을 적부터 남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겠다는 꿈을 꾸었노라. 좋은 친우를 사귀고 명문 대학을 나와 세계를 여행하며 각지의 다양한 지식을 모조리 섭렵했노라. 고향으로 돌아와 작은 학교를 세우고 학생들을 가르쳤노라. 수많은 제자가 그의 아래 가르침을 받고 그 가르침을 전 세계에 널리 퍼뜨리니 곧 그의 가르침이 진리가 되었노라.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목소리를 높여 그의 지식을 칭송했으며 부와 명예가 그를 뒤따랐노라. 노쇠한 몸을 더 이상 가눌 수 없을 때 그 육신은 작은 침대에 갇혔노라. 그의 정신이 육신으로부터 탈피하여 작은 침대를 벗어나 세계 밖 더 넓은 곳을 떠돌 자유를 찾은 그날까지 그는 현자라 불렸노라.
노인, 책을 덮고 안경을 벗어 다시 품 안에 넣는다. 그리고 왔던 길을 되돌아가 다시 무대 밖으로 나간다. 잠시 후 무대 배경의 나무 뒤에서 과일 바구니를 손에 든 여인이 등장한다. 여인은 나긋한 자태로 걸어 나오며 관객을 향해 부드럽게 미소 짓고 손을 흔든다. 무대 가운데에 선 여인은 과일 바구니에서 사과 하나를 집어 한 입 베어 무는 시늉을 한다.
여인: (환하게 미소지으며) 이루 말할 수 없이 가난한 집의 막내로 태어났으며, 아무도 그녀의 탄생을 축복하지 않았다. 철저한 무관심 속에 방치된 아이에게 희망은 사치였으며 그저 하루를 버텨낼 딱딱한 빵 한 조각만이 바라는 전부였다. 어디에도 가지 못했고 그 무엇도 되지 못했다. 마을의 교회만이 유일한 안식처였다. 불온한 복장으로 신성한 교회에 찾아와 사특한 목소리와 간교한 태도로 신실한 마을 청년들을 유혹했다는 죄로 마녀로 몰렸다. 불길이 작은 집을 뒤덮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바깥에서 굳게 잠긴 문을 두드리던 손에서 피가 나고 애타게 외치던 목이 전부 쉬어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할 때까지 그녀는 마녀라 불렸다.
여인의 손에서 사과가 굴러떨어진다. 아무런 표정 없이 사과를 짓밟는 여인, 이내 등을 돌려 무대 밖으로 사라진다. 잠시 후 무대 배경의 풀 뒤에서 작은 아이가 경쾌한 발걸음으로 뛰어나온다. 긴 나무 지팡이를 든 아이는 과장된 몸짓으로 목을 가다듬는다.
아이: (경쾌한 목소리로) 옛날, 한 양치기 소년이 살았습니다. 사실 이 마을엔 이 소년 외에 다른 양치기 소년들도 많이 살고 있었습니다. 양치기 소년은 생각했습니다. 양을 키우는 애들이 이렇게나 많은데 나까지 양을 키울 필요는 없지 않을까? 차라리 늑대를 키워서 이 많은 양들을 전부 잡아먹게 하면 그게 더 이득이지 않을까? 아이는 그래서 늑대를 키우는 늑대 치기 소년이 되었습니다. 늑대들은 마을의 양들을 전부 잡아 먹었습니다. 양들이 사라지자 늑대들은 양을 키우던 양치기 소년들까지 잡아 먹었습니다. 양치기 소년들이 사라지자 늑대들은 양치기 소년들의 가족과 이웃까지 전부 잡아 먹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전부 사라지자 늑대들은 마침내 늑대 치기 소년까지 잡아 먹었습니다.
아이, 관객을 향해 해맑게 손을 흔들고 뒤로 돌아 무대 밖으로 나간다. 잠시 후 무대 배경의 성 창문으로 로브를 뒤집어쓴 점술사가 나온다. 로브 밖으로 나온 손에는 주름이 쭈글쭈글 잡혀 있다. 점술사는 손에 든 카드들을 현란히 섞어 관객의 주의를 집중시킨다.
점술사: (꿈을 꾸듯 몽롱한 목소리로) 시작은 찬란하였으매 영광이 그 길을 비추겠지만 자만과 오판에 모든 것을 잃으리라. 아군에게 배신당하고 적군에게 기만당하며 끝내 그 옆에는 아무도 남지 않으리라.
점술사는 카드들을 바닥으로 떨어뜨린다. 바닥에 어지럽게 흩어진 카드들을 쳐다보지 않은 채 점술사는 성의 창문으로 들어간다. 잠시 후 성의 문이 다시 열린다. 광대 차림의 남자가 간이 의자를 끌고 무대 위로 올라선다. 광대는 무대 중앙에 의자를 펼친다.
광대: (의자에 아무렇게나 주저 앉는다.) 미천한 몸이 감히 의자에 앉아 관객 여러분께 말을 건네는 것을 이해해주시겠습니까? 네, 당연히 이해해주셔야죠. 그야 여러분께서는 푹신한 관객석에 편히 앉아 저를 구경하고 계시는데 말입니다. (다리를 꼬고 깍지 낀 손을 무릎 위에 얹으며) 여러분께서는 평상시 여러분의 본분을 다하고 계십니까? 집에서는 학생으로서의 본분, 부모로서의 본분, 사회에서는 여러분께서 맡으신 역할 상의 본분, 종교가 있다면 종교인으로서의 본분, 또는 군인으로서의 본분, 아니면 교사로서의 본분, 이 곳에서는 여러분께서 고상히 그 자리를 지키고 앉을 수 있도록 하는 관객으로서의 본분. 보아하니 여러분께서는 적어도 관객으로서의 본분은 충실히 지키고 계신 듯합니다.
말을 멈춘 광대가 품 안에서 동그란 안경을 꺼내 쓴다.
광대: 방금까지 무대에 올라왔던 배우들을 기억하십니까? 그들의 대사를 기억하시나요? 여러분께서는 이 연극의 주연 배우가 쉐도우밀크 쿠키라는 사실을 알고 이 곳에 오셨을 것입니다. 여러분께서는 어떤 것이 쉐도우밀크 쿠키의 진짜 모습인지 아시겠습니까? 노인의 모습, 여인의 모습, 아이의 모습, 점술사의 모습, 모두 아니라면 여기 앉아있는 이 광대의 모습? 이 중에 답이 있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겠지요. 여러분께서는 끝내 어느 것이 진짜 저인지 아실 길이 없으시겠지요.
광대가 안경을 벗고 공중으로 높이 던져올리자 안경이 사과로 변해 허공에서 떨어진다. 광대, 사과를 한 손으로 받아 한 입 베어 문다.
광대: 쉐도우밀크 쿠키를 만든 창조주, 마녀들도 그러했습니다. 정해진 무대 위에서 정해진 역할을 수행할 목적으로 만들어낸 배우가 예정된 장소에서 맡은 역할을 하지 않고 주어진 대사를 읊지 않고 본분에 충실하지 않자 그들은 당황했습니다. 올바른 지식을 널리 알리고 칭송받아야 할 학자는 그릇된 정보를 퍼뜨려 비난을 받았고, 볼품없는 오두막과 함께 타 죽어야 할 마녀는 집 밖으로 나와 마을 전체를 불태웠습니다. 늑대에게 잡아 먹혀야 할 늑대 치기 소년은 저 멀리 달아나 행방을 알 길이 없어졌고, 불길한 점괘만을 알려주는 점술사는 더 이상 미래를 보지 못했습니다.
사과가 순식간에 목동의 나무 지팡이로 변한다. 광대는 한 손으로 지팡이를 빙글빙글 돌리기 시작한다.
광대: 창조주들은 연극이 더 망가지기 전에 대본을 따르지 않는 배우들을 잡아 가두기로 결심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본분에 충실하지 않은 배우가 수없이 역할을 바꾸고 모습을 바꾸고 대사를 바꾸어, 마침내 그들이 처음 만들어 낸 진짜 쉐도우밀크 쿠키의 모습은 전혀 남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노인과 여인, 아이와 점술사, 그리고 광대. 저 중 어떤 것이 진짜 쉐도우밀크 쿠키일까? 창조주들, 마녀들은 혼란스러워했습니다.
광대는 손을 모아 나무 지팡이의 끝과 끝이 맞닿도록 접는다. 이윽고 천천히 펼쳐진 광대의 손에서 카드 더미가 나타난다. 카드를 섞고 공중에서 떨어뜨렸다 다시 붙잡으며 광대가 장난을 친다.
광대: 마녀들은 속인 쉐도우밀크 쿠키는 웃었습니다. 기뻐했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저 마녀들은 이 연극을 구경할 자격이 없다. 저 마녀들을 이 무대 위로 올리자. 저 마녀들에게 배역을 주자. 그리고 우리는 관객이 되어 마녀들의 연기를 구경하고 조롱하자. 환호하고 손뼉 치자. 우리에겐 그럴 자격이 있어. (꿈을 꾸듯 몽롱한 목소리가 갈수록 벅차오르듯 선명히 커진다.) 아아, 배우가 관객이 되고 관객이 배우가 되는, 연극이 현실이 되고 현실이 연극이 되는, 그리하여 거짓과 진실이 완전히 뒤바뀌는 세상은 얼마나 아름다울지.......
광대가 자리에서 일어나 카드 더미를 관객들에게 집어던진다. 허공으로 흩뿌려진 카드들은 관객석에 닿기 전에 형형색색의 종잇조각으로 변해 화려하게 흩어진다.
광대: (양팔을 벌리며 크게 외친다.) 그러니 여러분, 여러분께 주어진 굴레를 벗어던집시다. 관객으로서의 본분을 때려치웁시다. 다 같이 무대로 올라옵시다! (발을 구르며 제자리에서 뛰어오른다.) 밝은 조명이 떨어지고 찬란한 별과 달이 빛나는 이 무대에 서서 저와 함께 춤을 춥시다! 체면 따위는 걱정하지 말고 자유롭게! 자, 어서요! 올라오세요! 저와 함께 노래를 불러요! 손을 맞잡고 빙글빙글 돌아요! 무엇을 망설이십니까? 왜 머뭇거리시나요? 빨리 올라오라니까!!
광대의 마지막 외침은 절규에 가깝다. 관객 중 아무도 무대 위로 올라오지 않는다. 광대가 팔을 떨어뜨린다. 광대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진다.
광대: (고저없는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올라오시지 않으시는군요. 관객으로서의 본분을 다하시겠다는 결심이시군요. 제가 이렇게 여러분을 향해 외치고, 협박하고, 애원하고, 매달려도 여러분은 그 자리를 끝까지 앉아 저를 지켜보시겠다는 뜻이군요. 따뜻하고 부드러운 천이 덧대어진 관객석에 앉아, 이 광대가 무엇을 어디까지 하는지 그저 팔짱을 끼고 다리를 꼬고 앉아 구경하시겠다는 뜻이군요. 관객으로서의 본분을 지키고, 여러분이 지닌 특권을 끝까지 누리시겠다는 뜻이군요.
광대, 말 없이 관객석을 노려본다. 지나치게 긴 시간이 지나간다.
광대: (언제 그랬냐는듯 다시 높고 경쾌한 목소리로) 하지만 저는 그럼에도 여러분을 사랑한답니다. 관객이 있어야 연극이 올라오고 무대가 설치되고 배우가 준비한 대사를 하고 열정적인 연기를 선보일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결국 여러분 덕분에 저는 오늘도 이 무대에 올라올 수 있는 것이죠. 지상 최대의 극작가이자 시인이자 감독이자 연출가이자 배우이자 광대이자 재주꾼으로서의 본분을 다할 수 있는 것이죠. 오로지 친애하는 관객 여러분 덕분에, 너무도 사랑해 마지않는 관객 여러분 덕분에, 아무것도 모른 채 그저 환히 웃는 빌어먹을 관객 여러분 덕분에, 이 오븐 속 불구덩이에 처박힐-.
암전, 막이 내려간다.
제 2막
막이 열린다. 무대 배경에는 현대적인 사무실의 풍경이 그려져 있다. 잎사귀가 커다란 화분이 놓인 사무용 책상을 사이에 두고 연미복을 입은 사내와 흰 가운을 걸친 사내가 마주 보고 앉아 있다.
쉐도우밀크 쿠키: (지루함이 느껴지는 단조로운 목소리로) 그러니까 이 세상은 거대한 무대고 이 세상에 사는 이들은 전부 연극배우예요.
퓨어바닐라 쿠키: (입가에 미소를 띤 채) 네. 그렇군요. 일리 있는 말씀이에요.
쉐도우밀크 쿠키: 하지만 지금 이 세상에는 연기조차 하지 못하는 배우가 너무 많아요. 감독은 아주 형편 없죠. 각본은 쓰레기나 다름 없고요. 관객? 언급조차 하기 싫은 수준이에요. 맞아요, 어쩌면 이 수준 낮은 이들 사이에서 외로움을 느꼈을지도 모르겠어요.
퓨어바닐라 쿠키: (책상 위에 놓인 서류를 넘기며) 그래서 환자분께서는 스스로 다른 인격을 만들어내신 건가요? 학자와 마녀, 목동과 점술사, 광대와 그 외 수많은 다른 인격들을?
쉐도우밀크 쿠키: 그렇다고 볼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결과적으로 제가 느끼는 외로움은 해소되지 않았어요. 어찌 되었든 그들도 결국엔 나니까요. 무대 위에서 느끼는 외로움이 눈을 감아도 더 사무치게 와닿을 뿐이었죠.
퓨어바닐라 쿠키: 그것참, 많이 힘드셨겠어요.
쉐도우밀크 쿠키: 그리고 이 외로움을 당신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아요.
퓨어바닐라 쿠키: (여전히 미소를 입에서 지우지 않는다.) 저는 지금 외롭지 않은 걸요.
쉐도우밀크 쿠키: 당신에게는 동료가 많지만, 내면 깊숙한 이야기까지 전부 털어놓을 동료는 한 명도 없죠. 당신이 아끼는 친구들도 결국 당신 곁을 떠나 다른 이들과 어울리길 택했어요.
퓨어바닐라 쿠키: (놀라며) 제 친구들은 어떻게 아셨나요?
쉐도우밀크 쿠키: (무시하며 말을 계속한다.) 무대 위의 많고 많은 이들 중에 오로지 당신에게만 내 대본을 읽을 자격이 있어요. 내 지휘를 따를 자격이 있고요. 당신을 처음 봤을 때부터 당신이 내 의도를 완벽히 파악하고 철저히 내 뜻에 따라 움직여주리라는 것을 알았어요.
퓨어바닐라 쿠키: 저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하셨다는 말씀이신가요?
쉐도우밀크 쿠키: (고개를 앞으로 숙이며) 이 망할 연극을 연출한 감독과 배우들, 그리고 무대 바깥의 관객들을 전부 몰아냅시다. 그리고 당신은 나와 같이 연극을 만들어요. 감독과 각본과 연출과 그 외 잡다한 모든 역할은 나, 배우는 당신. 떨거지들이 모조리 사라진 무대 위에서 당신이 연기를 펼치면 나는 관객석에 앉아 우리가 함께 만들어낸 연극을 구경하는 거죠.
퓨어바닐라 쿠키: 이해해요. 무엇이든 뜻한 대로 이루어지는 세상은 정말 재미있겠지요.
쉐도우밀크 쿠키: 선생님께서는 저를 이해해주실 줄 알았어요.
퓨어바닐라 쿠키: (부드럽게 웃는다.) 그렇다면 이제 저희는 친구인가요?
쉐도우밀크 쿠키: (눈을 크게 뜨며) 네?
퓨어바닐라 쿠키: 당신에게 친근함과 측은함을 동시에 느껴요.
쉐도우밀크 쿠키: 무슨, 아니, 어떻게 그런 말을, 친구라니, 갑자기 그런 황당한 소리를,
퓨어바닐라 쿠키: 당신의 말은 아주 매력적으로 들리지만, 저는 지금 현재에서도, 이 무대 위에도 아직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해요. 어쩌면 이 연극은 우리가 상상하지 못한 더 좋은 방향으로 개선될 수도 있겠지요. 그러지 말고 저와 당신이 같이 무대 위에 서는 것부터 시작하면 어떨까요? 우리 둘이 함께 배우가 되는 거예요.
쉐도우밀크 쿠키: (천천히 머리 위에 손을 올리고 양손으로 머리칼을 마구 헝클어뜨린다. 갑자기 동작을 멈추며 관객석으로 고개를 돌리고 험악한 표정을 짓는다.) 어떤, 어떤 새끼가 먼저 여기 오자고 했어.
암전, 막이 내려간다.
제 3막
막이 올라간다. 1막과 같은 중세 시대 성의 그림이 무대 배경에 그려져 있다. 무대 중간에는 텅 빈 간이 의자가 놓여 있다. 시간이 지나도 무대는 변함이 없다. 관객들이 지루함을 느낄 즈음 한 사내가 무대 위로 올라온다.
이해자: (관객석을 향해 고개를 숙이며) 죄송합니다, 여러분. 연극은 끝났어요. 더 보여드릴 내용이 없네요. 주연 배우가 집에 돌아갔거든요. 저 때문에 화가 많이 났나 봐요, 평소엔 이렇게까지 하는 친구가 아닌데. 그 친구를 일부분만이라도 이해했다고 생각했는데 저는 아직도 갈 길이 멀었네요. 그래도 괜찮아요. 언젠가 제 진심이 닿을 날이 올 거라고 믿어요.
사내가 서글픈 미소를 짓는다.
이해자: 그 친구가 하는 말을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진 마세요. 결국 그 친구가 무대 위에서 내뱉은 모든 말, 무대 위에서 짓는 모든 표정은 전부 거짓에 불과하니까요.
막이 내려간다. 이윽고 관객석 곳곳에서 환호성과 박수 소리가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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