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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도시에 접속하신 것을 환영합니다 본문

비스트 단편선

황금도시에 접속하신 것을 환영합니다

逆鱗 2025. 4. 17. 10:24

더욱 강력해진 소울 잼의 힘으로도 골드치즈 왕국의 모든 백성들을 온전히 되살리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골드치즈 왕국의 건국 공신들이자 황금도시의 관리자들인 세 쿠키들의 영혼과 몸은 현실에 무사히 구현되었지만, 그보다 훨씬 많은 골드치즈 왕국 백성들의 영혼은 아직 가상의 황금도시에 연결된 채 치즈 보관소에 잠들어있는 상황이었다.

 

보다 안전하게 모두를 다시 살려내기 위해 골드치즈 쿠키는 다시 한 번 황금도시를 열고 그 안에 모인 모든 쿠키들을 그대로 현실에 구현하기로 결심했다. 찬란히 빛나는 연두빛 스크린창과 상형문자들이 사방에 띄워졌다. 여러 번의 철저한 시뮬레이션을 거친 황금도시는 골드치즈 쿠키가 프로그래밍한 그대로 완벽히 가동되었다. 욕심과 풍요의 주인의 철저한 관리와 감독 아래 그 어떠한 오류나 실수 따위 없는, 역사상 가장 완벽한 가상 세계 황금도시가 열리려는 순간이었다.

 

"음, 골드치즈 쿠키님? 한 번 와서 봐주셔야 할 것이 있는데요."

 

관제실에 앉아 황금빛으로 빛나는 커다란 화면을 들여다보던 모짜렐라맛 쿠키가 손을 높이 들고 흔들어 골드치즈 쿠키를 호출했다. 드높은 왕좌에서 내려와 관제실로 곧장 날아간 골드치즈 쿠키는 날개를 접고 내려앉아 모짜렐라맛 쿠키가 들여다보고 있는 화면을 바라보았다.

 

"무슨 문제라도 있느냐, 모짜렐라맛 쿠키?"

 

"네에. 저기 화면 오른쪽 상단에 붉은빛 점이 계속 반짝이는 것이 보이시나요? 아무래도 B-197 구역에 오류가 발생한 모양이에요."

 

초록빛 직선으로만 이루어진 황금빛 화면의 한 구석에서 불길하게 빛나는 붉은 점을 보며 골드치즈 쿠키는 눈을 가늘게 떴다.

 

"이건 처음 보는 현상인데. 현재 황금도시에 접속한 쿠키는 정비용 마지팬맛 쿠키들 밖에 없지 않느냐?"

 

모짜렐라맛 쿠키가 고개를 끄덕이며 B 구역을 확대해 화면에서 더 크게 보이도록 했다.

 

"맞아요. 게다가 저 점이 한 곳에 가만히 멈춰 있는 게 아니라 계속해서 위치를 바꾸며 이동하고 있어요. 보세요, 붉은빛 점이 B-197 구역에서 B-198 영역으로 향하고 있죠? 이 상황에서 영혼 치즈 보관소에 있는 백성들의 영혼을 그대로 황금도시에 불러 온다면 문제가 생길지도 몰라요."

 

깜빡이는 붉은 점이 초록빛 경계선을 넘어 다른 구역으로 천천히 이동하고 있었다. 골드치즈 쿠키는 붉은 점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모짜렐라맛 쿠키에게 지시했다.

 

"B-197 구역과 B-198 구역에 모인 마지팬맛 쿠키들의 모드를 관찰 경비용으로 바꾸고, 마지팬맛 쿠키들이 촬영하고 있는 황금도시의 영상을 이 관제실로 불러오거라."

 

골드치즈 쿠키의 명령에 모짜렐라맛 쿠키는 퐁실하고 말랑한 모짜렐라 치즈 키보드를 두드려 명령어를 입력했다. 황금빛 홀로그램 창에서 초록색 선들이 사라지고 황금도시를 비추는 수십여개의 작은 영상들이 화면에 나타났다. 언제 보아도 질리지 않는 찬란한 광경이었다. 세밀한 벽화가 새겨진 웅장한 피라미드와 거대한 기둥들, 부유하는 공중 정원과 꾸덕한 치즈가 흐르는 분수, 홀로그램 영상이 나타났다 사라지길 반복하는 거대한 스크린, 넓게 펼쳐진 아스팔트 도로와 과일을 한가득 실은 스포츠카까지, 골드치즈 쿠키가 하나하나 직접 설계하고 빚어낸 아름다운 황금도시에서 유난히 이질적인 모습이 눈에 띄었다.

 

"열 세번째 영상! 초점을 최대한 당겨 저 영상을 확대해 보거라!"

 

"분부대로 따르겠습니다~"

 

모짜렐라맛 쿠키는 손짓 한 번으로 나머지 영상을 관제실 화면에서 전부 치워버린 후 골드치즈 쿠키가 말한 열 세번째 영상을 크게 확대해 스크린창에 한 가득 나오도록 설정했다. 드높은 빌딩의 옥상 난간에 버티고 서서 유유히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는 커다란 사내의 뒷모습이 화면에 비춰졌다. 야수의 갈기처럼 사납게 헝클어진 길고 새카만 머리카락이 바람에 휘날렸다. 사내가 무언가 눈치챈 듯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이건 말도 안 된다! 어째서 저 미친 녀석이 내 황금도시에 나타날 수 있단 말이냐?"

 

머나먼 비스트이스트 대륙에 다녀온 이후로 꿈에라도 나타날까 매일 밤잠을 설치게 만든 원흉, 악몽같은 사내의 얼굴이 화면 너머 골드치즈 쿠키를 노려보고 있었다.

 

"버닝스파이스 쿠키!"

 

골드치즈 쿠키가 금빛 광휘의 창을 두 손으로 꽉 쥐고 화면을 보며 사납게 외쳤다. 모짜렐라맛 쿠키의 두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

 

"저 자가 감히 주제넘게 골드치즈 쿠키님의 보물을 넘본 죄로 위대하신 골드치즈 쿠키님의 창에 뚫린 태초의 악마 비스트 쿠키인가요?"

 

"맞다! 하지만 저 놈을 분명 짐의 손으로 직접 향신료 퇴적층 절벽 아래 파묻어 버렸는데! 이렇게 태평히 구경할 때가 아니다. 저 놈이 내 황금도시를 모조리 파괴하기 전에 어서 막아야만......"

 

금방이라도 황금도시로 들어가 다시 승부를 낼 것처럼 격분하여 날개를 활짝 펼친 골드치즈 쿠키의 팔을 모짜렐라맛 쿠키가 말캉한 머리 아이싱으로 나긋하게 붙잡았다.

 

"왕이시여, 진정하세요."

 

경직된 팔을 부드럽게 감싸 조물조물 주무르는 모짜렐라맛 쿠키의 말캉하고 쫀득한 모짜렐라 치즈 마사지에 사납게 구겨져 있던 골드치즈 쿠키의 표정이 나른하게 풀어졌다.

 

"아으으, 시원하구나. 어깨도 조금 더 주물러다오."

 

"후후, 제 말을 다 들어주시면 마저 마사지를 해 드릴게요. 황금도시 안의 저 자는 아마 진짜 버닝스파이스 쿠키가 아닐 확률이 높아요. 혹시 기억나시나요? 오래 전에 골드치즈 쿠키님께서 홀리베리 왕국에서만 나는 베리로 만들어 숙성시킨 진정한 베리 주스의 맛을 그대로 황금도시에 구현하고 싶으시다고, 홀리베리 왕국까지 다녀오셔서 베리 주스를 구해오신 적 있으셨잖아요."

 

모짜렐라맛 쿠키의 차분한 말에 골드치즈 쿠키의 눈이 크게 뜨였다. 무언가 깨달은 듯 아아, 하고 짧은 탄성을 터뜨린 골드치즈 쿠키가 말했다.

 

"그래, 그런 적이 있었어. 그리고 그 날 황금도시에 갑자기 홀리베리 쿠키의 모습이 나타났었지. 짐이 기억하는 마지막 모습으로, 커다란 방패와 분홍빛 드레스를 차려 입은 차림새로 나타나 변함없이 호탕한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모짜렐라맛 쿠키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하지만 그것은 진짜 홀리베리 쿠키님의 모습이 아니라 황금도시에 일시적으로 나타난 일종의 오류였었죠. 골드치즈 쿠키님께서 그만 부주의하게 황금 관에 흘리신 베리 주스가 그 원인이었고요. 골드치즈 쿠키님께서 황금도시 밖으로 나오셔서 관에 묻은 베리 주스를 직접 닦아내시고 나니 홀리베리 쿠키님의 환영이 사라졌었잖아요?"

 

어떻게 그런 현상이 나타났는지 정확한 이유는 아무도 몰랐다. 결국 황금도시의 근본과 토대는 전부 골드치즈 쿠키의 소울잼에서부터 비롯되었기에, 황금 관에 누워 황금도시를 운영하는 골드치즈 쿠키의 무의식이 베리 주스를 촉매로 구현되었으리라 짐작하고 넘어갔을 뿐이다. 

 

"그렇다면 지금 황금도시 안에 나타난 저 미친 녀석의 모습도 그 때와 비슷한 환영일 가능성이 높다는 거지?"

 

"99퍼센트 확신할 수 있어요. 바스크치즈맛 쿠키가 그 어느 때보다 철저히 황금도시의 입구를 지키고 있는데 어떻게 머나먼 타대륙에 있는, 그것도 죽었는지 살았는지 확신할 수 없을 정도의 큰 부상을 입은 쿠키가 갑자기 이 황금도시에 나타날 수 있겠어요? 오류가 만들어낸 환영이 아니면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죠."

 

평온을 되찾은 표정으로 골드치즈 쿠키가 날개를 접고 곰곰히 생각했다. 일전에는 베리 주스가 황금도시의 오류를 일으켰다면 이번엔 무엇이 저 환영의 촉매제가 되었던 걸까? 버닝스파이스 쿠키가 다스리던 넓은 황무지에 강렬한 향신료 폭풍이 쉴새없이 휘몰아치던 사실을 떠올린 골드치즈 쿠키가 물었다.

 

"모짜렐라맛 쿠키, 짐이 비스트이스트 대륙에서 돌아왔을 때 짐의 몸에 향신료 가루가 많이 묻어 있었느냐?"

 

주군의 질문에 모짜렐라맛 쿠키가 장난스럽게 답했다.

 

"말도 마세요. 막 돌아오셨을 땐 골드치즈 쿠키님과 스모크치즈맛 쿠키님의 몸에서 날리는 매캐한 향신료 향 때문에 다들 가까이 가기도 힘들어할 정도였으니까요. 따뜻하고 걸쭉한 치즈 퐁듀 온천탕에 몸을 하루 종일 담그고 계셔도 향이 다 사라지지 않았잖아요?"

 

"끄응. 그래. 어쨌든 이 현상의 원인은 확실해졌군. 비스트이스트 대륙에 다녀온 후, 짐의 몸에 묻어 있던 향신료 가루가 황금 관에 남아 오류를 일으킨 모양이다. 그렇다면 빨리 황금 관에 남아 있는 향신료를....... 잠깐, 저 놈이 지금 뭐하는 거야?"

 

무심코 관제실의 화면으로 고개를 돌린 골드치즈 쿠키가 기겁하며 외쳤다. 마지팬맛 쿠키가 송출하는 화면을 똑바로 노려보던 버닝스파이스 쿠키의 손에 어느 새 거대한 도끼창이 들려 있었다. 다리를 넓게 벌린 채 팔을 크게 뒤로 젖힌 자세에서 마치 당장이라도 손에 든 도끼를 휘둘러 던질 것 같은 박력이 느껴졌다. 더 깊이 생각할 틈도 없이 골드치즈 쿠키는 손을 뻗어 황금도시에 곧바로 접속 가능한 비상용 모짜렐라 고글을 뒤집어쓰며 외쳤다.

 

"모짜렐라맛 쿠키! 짐의 관에 향신료 가루가 남아 있는지 조사를 부탁한다! 저 야만스러운 놈이 내 소중한 도시를 다 부숴놓기 전에 어디 묶어놓던지 해야겠어!"

 

"자, 잠시만요, 골드치즈 쿠키님!"

 


 

버닝스파이스 쿠키는 불편한 심기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매캐하고 자극적인 향신료가 휘몰아치지 않고 불꽃에 타들어가는 연기의 향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곳, 유유히 흐르는 금빛 치즈 강 위로 커다란 돛대를 펼친 배가 소리없이 떠다니고 높은 빌딩 위를 빼곡히 수놓은 창에서 나오는 인공적인 형광빛이 어두운 하늘을 밝히는 곳. 길거리에 행인은 고사하고 쥐새끼 하나 돌아다니지 않는 이 기이하고 낯선 곳은 그가 다스리는 영지가 아니었다. 무너지는 신전의 거대한 파편들이 머리 위로 떨어진 것이 버닝스파이스 쿠키의 마지막 기억이었건만, 지금의 그는 눈을 감았다 뜬 사이 다친 곳 하나 없이 생전 처음 본 장소에 덩그러니 서 있었다.

 

뒤통수에 꽂히는 집요한 시선을 알아차린 것은 순전히 그의 동물적인 감각에 기인했다. 육안으로 보이지 않을 만큼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무언가가 버닝스파이스 쿠키를 관찰하듯 지켜보고 있었다. 버닝스파이스 쿠키는 뒤를 돌아 시선이 느껴지는 곳을 똑바로 노려보았다. 시야의 주변으로 불이 번지듯 눈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저 쪽에서 먼저 움직이는 순간 도끼창을 날려 반으로 갈라버릴 심산으로 그는 무기를 소환해 손에 쥐었다. 팔을 휘둘러 도끼를 멀리 던지려는 순간, 날카로운 금빛 창이 허공에서 날아와 버닝스파이스 쿠키의 발치 앞에 꽂혔다.

 

"야, 이 못된 녀석아! 그거 던지지 말고 가만히 있거라! 건물 하나라도 부서진다면 네놈을 가루로 만들어버릴 테니까!"

 

버닝 스파이스 쿠키는 날카롭고 높은 목소리가 들리는 허공을 향해 고개를 들어올렸다. 새까만 하늘 위에 태양을 대신하듯 찬란히 빛나는 거대한 날개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결코 잊지 못할 마지막 기억을 버닝스파이스 쿠키에게 선사한 장본인, 골드치즈 쿠키가 하늘에서 쏜살같이 내려오고 있었다. 콰앙! 커다란 소리와 함께 날개를 접고 지상으로 착륙한 골드치즈 쿠키는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버닝스파이스 쿠키 앞에 꽂힌 창을 뽑았다. 버닝스파이스 쿠키는 날카로운 이를 훤히 드러내며 만면 가득히 섬뜩한 미소를 지었다.

 

"골드치즈 쿠키! 다시 만난다면 네 놈을 어떻게 찢어발겨야 할지 고민하던 차였는데 아주 반갑군! 자, 창을 들어라! 다시 한 번 승부를......."

 

"내가 가만히 있으랬지!"

 

허공에서 나타난 금빛 쇠사슬이 버닝스파이스 쿠키의 양 손목을 칭칭 휘감았다. 쇠사슬의 반대편 끝을 잡은 골드치즈 쿠키가 사슬을 제 쪽으로 세게 잡아당기자 버닝스파이스 쿠키의 손목이 빈틈없이 꽉 조여졌다. 그 바람에 버닝스파이스 쿠키가 손에서 놓친 도끼창이 땅에 닿아 소멸되었다. 순식간에 죄수보다 못한 꼴로 결박당한 버닝스파이스 쿠키는 말을 더 잇지 못하고 어이가 없다는 듯 골드치즈 쿠키를 쳐다보았다.

 

"이게 무슨 떳떳하지 못한 짓이냐! 미처 못 끝낸 싸움의 끝을 보고자 나를 이곳으로 불러낸 게 아니었나!"

 

"네놈야말로 이게 무슨 짓이야! 다짜고짜 내 소중한 도시를 부수려 하다니! 그리고 끝을 못 보긴 뭘 못 봐, 이미 나한테 처참히 져서 돌 더미에 깔린 주제에! 그리고 또 내가 너 같은 줄 알아! 동의도 없이 대뜸 불러내서 쌈박질을 하게! 난 너를 이 곳으로 부른 적 없어! 네 녀석이 멋대로 이 황금도시에 나타난 거지!"

 

버닝스파이스 쿠키, 더욱 정확히 말하자면 골드치즈 쿠키가 기억하는 모습대로 구현된 환영 버닝스파이스 쿠키가 미간을 잔뜩 구겼다.

 

"무슨 헛소릴 지껄이는 게냐, 이 정신 나간 어린 녀석이!"

 

"말 다 했어? 이 정신 나간 늙은 녀석이! 그러니까 간단히 말하자면 네 놈은 짐의 세계에 멋대로 들어온 불청객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게다가 진짜도 아닌 환영 불청객이라고!"

 

버닝스파이스 쿠키는 골드치즈 쿠키의 말을 무시하고 손목에 감긴 황금빛 사슬을 풀어내려 힘을 주었다. 하지만 사슬은 미동도 하지 않고 오히려 더욱 세게 버닝스파이스 쿠키의 손목을 옥죄었다. 여전히 사슬의 반대편을 손에 쥔 채 그 꼴을 보던 골드치즈 쿠키가 의기양양하게 말을 이었다.

 

"하핫, 말했지 않느냐! 이 곳은 짐이 만들어낸 가상세계! 황금도시의 유일신인 짐의 명령은 그 무엇보다 절대적이니라! 그러니 네 놈은 결코 그 사슬을 풀 수 없다!"

 

버닝스파이스 쿠키가 손목에서 힘을 풀고 주변을 둘러보며 미심쩍은 목소리로 물었다.

 

"네가 이 곳을 만들었다고? 전부?"

 

"그래, 소울잼의 힘으로 만든 이 찬란한 황금도시의 자태를 마음껏 감상하도록......."

 

<적에게 정보를 죄다 퍼주면 어떻게 해요, 골드치즈 쿠키니이이임!>

 

머릿속에 모짜렐라맛 쿠키의 목소리가 벼락같이 울려 퍼지는 바람에 골드치즈 쿠키는 자리에서 펄쩍 뛰어올랐다. 비상용 모짜렐라 고글에 있는 무전 기능이었다.

 

<모짜렐라맛 쿠키! 깜짝 놀랐지 않느냐! 짐의 황금 관은 살펴보았느냐?>

 

<살펴보고 말고 할 것도 없이, 관 안쪽은 아주 깨끗했어요! 먼지 한 톨 없이 아주 말끔한 상태였다고요!>

 

<뭐라? 그럼 저 녀석은 대체 뭣 때문에 나타난 거야?>

 

<그건 아직 모르겠어요. 혹시 몰라서 황금 관 주변도 샅샅이 살펴보고 있으니 골드치즈 쿠키님께선 이제 저 놈을 묶어둔 채로 가만히 내버려두시고.....>

 

"소울잼의 힘이 무궁한 것은 이미 알고 있었으니 그리 놀랄 것도 없지만, 나조차 이런 거대한 세계를 구축해본 적은 없다."

 

머나먼 지평선까지의 거리를 가늠하듯 눈을 가늘게 뜨며 주변을 둘러본 버닝스파이스 쿠키가 감탄 어린 목소리로 말하자 골드치즈 쿠키는 더욱 의기양양해졌다.

 

"당연하지! 쿠키 세계의 제일가는 탐욕의 화신, 나 골드치즈 쿠키만이 할 수 있는 발상이니라."

 

<그런 얄팍한 칭찬에 응해주시면 어떻게 해요, 골드치즈 쿠키니이이임!>

 

가슴을 활짝 펴고 허리에 양손을 얹은 자세로 당당히 외친 골드치즈 쿠키의 말이 끝나자마자 버닝스파이스 쿠키는 날카로운 이를 씩 드러내며 그 어느 때보다 가소롭다는 듯 미소 지었다.

 

"왜냐하면 그럴 가치가 하등 없기 때문이지. 가상 세계라니, 하! 정성을 들여 파괴할 생각조차 들지 않는 허접한 도시야. 그야말로 모래 위에 쌓은 누각이요 공중 위에 지어진 궁궐이로다. 뭐, 사방이 먼지와 모래뿐인 네놈의 너절한 왕국과는 썩 잘 어울리는군."

 

"말 다 했어, 임마! 짐을 욕하는 것도 참을 수 없지만 짐의 보물과 왕국을 무시하는 것은 더욱 참을 수 없도다!"

 

골드치즈 쿠키가 버럭 화를 내며 버닝스파이스 쿠키의 손목을 묶은 사슬을 한 번 더 잡아당겼다. 순식간에 길게 늘어난 사슬이 버닝스파이스 쿠키의 몸을 여러 바퀴 돌며 숨도 쉬기 힘들 정도로 꽉 묶었다.

 

<아아, 골드치즈 쿠키님! 제발 이제 그 놈을 가만히 내버려두시고 밖으로 나오셔서.......>

 

무전으로 들리는 모짜렐라맛 쿠키의 애절한 목소리를 무시하고 골드치즈 쿠키는 날개를 활짝 펴고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사슬에 묶인 버닝스파이스 쿠키 역시 허공으로 덜렁 들어올려졌다. 골드치즈 쿠키가 온 황금도시에 쩌렁쩌렁 울리도록 일부러 커다랗게 키운 목소리로 외쳤다.

 

"네 놈에게 이 위대한 황금도시의 모든 구석구석을 직접 보여주겠다! 네 놈이 스스로 이 황금도시가 역사상 가장 위대한 도시라는 사실을 인정할 때까지!"

 

<도발에 응하시면 어떻게 해요, 골드치즈 쿠키니이이이임.......>

 

모짜렐라맛 쿠키의 목소리가 메아리만을 남기고 아득히 멀어졌다.

 


 

체다치즈 강 위로 치즈볼새의 형태를 띤 자그마한 배가 미끄러지듯 흘러갔다. 동그랗고 작은 치즈볼새 배 안을 혼자 전부 채울 정도로 거대한 체구의 남성이 황금 사슬에 묶인 채 죽어라 노를 젓고 있었다.

 

"어허, 속도가 영 나지 않는구나! 더 세게 젓거라, 이 게으른 녀석!"

 

치즈볼새 배의 갑판 위에 누워 포도를 느긋이 까 먹던 골드치즈 쿠키가 버닝스파이스 쿠키를 향해 짐짓 호통을 크게 쳤다. 버닝스파이스 쿠키가 잔뜩 성난 목소리로 되받아쳤다.

 

"세게 젓고 있는데 속도가 안 나잖아! 네놈이 무슨 수작을 부린 게 아니냐!"

 

"아닌데? 아무 짓도 안 했는데? 그냥 네 힘이 약한 것 뿐인데? 네가 죽을힘을 다해 노를 저어도 겨우 이 정도가 최대 속도라는 뜻인데?"

 

골드치즈 쿠키가 살살 약을 올리자 날카로운 이를 빠득빠득 갈며 손에 쥔 노를 박살낼 것처럼 인상을 쓴 버닝스파이스 쿠키가 노를 강에 던져버렸다. 그리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젠 못 참아! 이런 짓은 집어치우고 다시 싸움을 시작하자! 한 쪽이 완전히 바스라져 가루가 될 때까지 싸우자고!"

 

거구의 남성이 벌떡 일어서자 치즈볼새 배가 중심을 잃고 이리저리 흔들렸다. 골드치즈 쿠키는 생글생글 웃으며 사슬을 잡아당겨 씩씩 화를 내는 버닝스파이스 쿠키의 몸을 다시금 묶어 납작 엎드리게 해 억지로 진정시켰다.

 

"싸우고 싶다고? 그런데 어쩌나, 이 곳에선 네 공격이 전혀 통하지 않는 걸! 아무리 열심히 도끼질을 해도 이 황금도시 안에 있는 풀 한 포기조차 상처 입힐 수 없는데 어떻게 나와 싸우려고 그러나?"

 

그 말대로였다. 쇠사슬에 묶인 채로 도끼창을 소환해 골드치즈 쿠키의 날개를 또 다시 찢어발기려던 버닝스파이스의 공격은, 도끼창의 날이 골드치즈 쿠키의 몸을 그대로 통과하며 실패로 돌아갔다. 황금도시에서 버닝스파이스 쿠키의 악의를 품은 공격은 그 누구에게도 통하지 않았다. 아무 것도 파괴할 수 없는 파괴신이라니, 꽤나 우스운 꼴이었다. 그 사실을 알아차린 골드치즈 쿠키는 버닝스파이스 쿠키의 몸을 묶은 사슬을 조금 느슨하게 풀어주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알차게 써먹었다.

 

"네 이 놈! 으아악!"

 

분에 못 이겨 치즈볼새 배 바닥에 드러누워 발광하듯 난리를 치는 버닝스파이스 쿠키의 모습을 보며 골드치즈 쿠키가 혀를 찼다.

 

"그러니까 이 강만 다 건너면 사슬도 풀어주겠다니까? 여태 속고만 살았나, 말을 못 믿네. 싫으면 그냥 이 꼴로 계속 끌려 다니던가. 안 하면 네놈 손해지 내 손해더냐?"

 

사나운 짐승이 울부짖듯 한참을 으르렁거리던 버닝스파이스 쿠키가 한 층 얌전해진 자세로 다시 앉았다. 골드치즈 쿠키는 기다렸다는 듯 허공에서 새로운 황금 노를 만들어 버닝스파이스 쿠키에게 건네주었다.

 

"아직 짐의 황금도시를 다 둘러보려면 한참 남았느니라. 이렇게 참을성이 없어서야, 원!"

 

버닝스파이스 쿠키가 골드치즈 쿠키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저주를 퍼부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골드치즈 쿠키는 허공에서 빈 잔을 소환해 진득한 체다치즈 강물을 듬뿍 퍼 올리며 생각했다.

 

'모짜렐라맛 쿠키가 계속 조용하군. 황금 관 안에 향신료 가루가 남아 이 녀석의 환상을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면 대체 무엇 때문이지? 황금 관 바깥쪽에 떨어진 향신료 가루까지 전부 찾아내려면 시간이 한참 걸리겠어.'

 

치즈 강물에 아른아른 비치는 황금도시의 야경을 만끽하며 골드치즈 쿠키는 잔을 버닝스파이스 쿠키에게 내밀었다.

 

"한 잔 할래?"

 

버닝스파이스 쿠키가 미간을 한껏 구기며 내뱉었다.

 

"난 치즈가 싫다!"

 

"맛알못이로구나."

 

"무슨 뜻이냐!"

 

"그런 게 있느니라."

 

골드치즈 쿠키는 여유롭게 잔을 기울여 안에 든 치즈를 전부 들이켰다.

 


 

강을 건넌 후 약속대로 골드치즈 쿠키는 버닝스파이스 쿠키의 몸을 묶은 사슬을 풀어주었다. 그 후로도 골드치즈 쿠키는 버닝스파이스를 끌고 온갖 장소를 돌아다녔다. 치즈가 들어간 메뉴밖에 팔지 않는 카페테리아(버닝스파이스 쿠키는 진노를 억누르지 못했다)부터 펼칠 엄두도 나지 않게 긴 파피루스 두루마리가 수없이 전시된 커다란 도서관(버닝스파이스 쿠키가 유일하게 관심을 보인 곳이었다)까지. 마침내 황금도시 최대 규모의 테마파크, '골드치즈 쿠키의 분노'가 자랑하는 모든 어트랙션을 한 번씩 즐기고 난 후에야 골드치즈 쿠키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어? 지금 나 이 상황을 꽤 즐기고 있나?'

 

날개가 달린 머리띠를 쓰고 양손에는 치즈 토핑이 잔뜩 얹어진 아이스크림을 든 채로 골드치즈 쿠키가 새삼 생각했다. 정돈되지 않아 이리저리 엉긴 머리에 'I HATE CHEESE' 라고 쓰인 우스꽝스러운 머리띠를 얹은 버닝스파이스 쿠키가 손에 들린 치즈 탕후루를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들여다보고 있었다. 대망의 마지막 장소에 도착한 골드치즈 쿠키는 헛기침을 하며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탁 트인 건물의 옥상 위에 자그마한 망원경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이 곳은 이 황금도시에서 가장 경치가 좋은 전망대다. 여기 놓인 망원경으로 아래를 보면, 짠! 황금도시의 광경을 한 눈에 볼 수 있지! 짐이 가장 좋아하는 장소이니라."

 

여느 때보다 자랑스러움이 묻어나오는 목소리로 골드치즈 쿠키가 신나게 외쳤다. 골드치즈 쿠키의 한껏 들뜬 표정을 지그시 바라보던 버닝스파이스 쿠키는 마지못해 망원경을 들여다보았다. 망원경의 렌즈 너머로 드넓은 황금도시의 전경이 펼쳐졌다. 세밀한 벽화가 새겨진 웅장한 피라미드와 거대한 기둥들, 부유하는 공중 정원과 꾸덕한 치즈가 흐르는 분수, 홀로그램 영상이 나타났다 사라지길 반복하는 거대한 스크린, 넓게 펼쳐진 아스팔트 도로와 과일을 한가득 실은 스포츠카. 골드치즈 쿠키가 가장 소중한 보물을 보관하기 위해 만들어 낸 가상의 도시, 역사상 가장 거대한 규모의 보물함.

 

"그렇게까지 말한 것치고는 별 거 없는 시시한 광경이군."

 

"그렇게까지 말한 것치고는 꽤나 감명 받은 표정인데?"

 

골드치즈 쿠키는 버닝스파이스 쿠키를 밀어내고 망원경을 차지했다. 망원경을 세밀하게 조작하며 황금도시의 풍경을 들여다보는 골드치즈 쿠키의 목소리에서는 흥분이 감춰지지 않았다.

 

"비스트이스트 대륙에서 네놈에게 패했더라면 다시 보지 못했을 광경이지. 사실 아직도 네 놈의 얼굴을 마주보면 분노와 두려움이 가장 앞서지만, 그래도 지금은 처음 네놈을 봤을 때보다 감정이 조금 가라앉은 듯하구나."

 

버닝스파이스 쿠키는 팔짱을 낀 채 골드치즈 쿠키를 내려다보며 날카롭게 내뱉었다.

 

"그래봤자 허상일 뿐이다."

 

골드치즈 쿠키는 이전처럼 화를 내지 않고 대수롭지 않게 응수했다.

 

"그래. 허상이지. 보물함 안에서 평생 빛을 보지 못한 채 잠든 보물은 누구도 가치를 알아주지 않으니, 언젠가 내 가장 귀한 보물들을 모두 밖으로 꺼내야할 때가 오겠지. 게다가 내게는 이 황금도시 못지않게 반짝반짝 빛나고 귀중한 왕국이 있느니라. 어떠냐, 부럽다고 솔직히 말해도 좋다."

 

버닝스파이스 쿠키는 괜히 머리를 한손으로 헝클어뜨렸다. 자꾸만 불쾌하기 짝이 없는 감정이 속에서 치밀어 올랐다. 수없이 나타나고 사라진 문명들과 함께 지나치게 오랜 세월을 버텨온 그에게 황금도시에서의 경험이 새롭고 즐거울 리 만무했다. 모조리 오래 전에 경험해 본 것들이고, 오래 전에 만들어 본 것들이고, 오래 전에 맛 본 것들인데도, 그런데도 자꾸 이 모든 것들을 처음 겪는 것처럼 감정이 제멋대로 날뛰는 것은, 분명 주제도 모르고 겁도 없이 제 앞에 알짱거리는 이 작고 빛나는 황금새의 탓이리라.......

 

<골드치즈 쿠키님, 아직도 계속 황금도시에 접속해 있으신가요? 버닝스파이스 쿠키의 환영도 그대로 있고요?>

 

모짜렐라맛 쿠키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울려 퍼지자 골드치즈 쿠키는 저도 모르게 머리띠를 벗어 던졌다.

 

<그래. 오래도 걸렸구나, 모짜렐라맛 쿠키. 향신료 가루는 어디에서도 발견 못한게냐?>

 

<송구합니다, 왕이시여. 정말 온 주변을 샅샅이 뒤져보았는데도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어요.>

 

시무룩한 모짜렐라맛 쿠키의 대답에 골드치즈 쿠키는 저도 모르게 안도했다. 그리고 골드치즈 쿠키는 그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부러 엄격하고 경직된 말투로 모짜렐라 쿠키에게 무전을 보냈다.

 

<어쩔 수 없지. 수고 많았다. 이런 사소한 오류 하나 쯤 황금도시에 남겨두는 것도 크게 나쁘진 않을 듯하니.......>

 

그 순간 버닝스파이스 쿠키가 골드치즈 쿠키의 볼 쪽으로 팔을 길게 뻗었다. 흠칫 놀란 골드치즈 쿠키가 한 걸음 뒤로 물러섰지만 버닝스파이스 쿠키의 손이 골드치즈 쿠키의 머릿결을 조심스레 헤집는 것이 더 빨랐다.

 

"머리에 뭘 숨기고 다니는 거냐."

 

버닝스파이스 쿠키의 손에 들린 것은 작고 빨간 향신료 가루 한 톨이었다. 골드치즈 쿠키가 두 눈을 크게 떴다.

 

"어, 이건......."

 

그 순간 세찬 바람이 불어왔다. 눈을 감았다 뜨니 버닝스파이스 쿠키의 환영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처음부터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던 것처럼, 찬란히 빛나는 황금도시는 깊은 적막에 빠져들었다. 한참을 그 자리에 못 박힌 것처럼 가만히 서 있던 골드치즈 쿠키는 바람결에 흐트러진 머리를 쓸어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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